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에페소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여러 가지를 청합니
다. 여기서 청하는 것들은 사람들이 흔히 기도하여 청하는 것들과 조금 거
리가 있습니다. 평화로운 삶이나 건강, 가정의 화목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
히려 성령으로 내적 인간이 굳세어지기를,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사시기
를,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
기를 청합니다.
이러한 것을 하느님께 청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사
랑을 알고, 그 사랑을 기초로 하여서 살기를 바라고 그것을 하느님께 청합
니까? 그렇게 하는 삶은 어떠하리라고 생각합니까? 그 삶은 마냥 평온할 수
만은 없을 것이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미친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
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서 마귀가 들렸다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에페 3.19) 것이라면, 그 사랑
을 알게 된 사람이 여느 사람들 처럼 살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의 삶은 뒤
집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나는
성인이 아니라고,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고 말하며 사랑의 요구 앞에서 물러
납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
게 되기를”(3.19) 청합니다. 그런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에페소서를 읽으면서, 이러한 청원을 하느님께 드린다는 것 자체가 큰 도
전으로 다가왔습니다. 땅만 쳐다보고 땅에 달라붙어서 그저 삶의 사소한 것
들을 청하는 것을 넘어,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드높은 은총의 삶을 청
하여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3.20)이
십니다. ⊕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