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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시를 쓴다   -   이기철



잠자다가 일어나 귀뚜라미같이 슬픈 마음으로 시를 쓴다

 

나는 한때 갈대의 신랑이 되고 싶은 때가 있었다

갈대의 신랑이 되어 불어오는 바람의 치맛자락에 안겨

그의 부드러운 속살에 입맞추고 싶은 때가 있었다

나는 한때 싸리꽃의 애인이 되고 싶은 때가 있었다

싸리꽃의 애인이 되어 그의 희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의 무릎을 베고 들으며 잠들고 싶은 때가 있었다

지금도 나는 후두둑 지는 낙엽 소리를 주워 모아

새벽이 와도 끝나지 않는 긴 편지를 쓰고 싶은 밤이 있다

삶이 까닭없이 멱살을 잡고 싶은 것이 될 때면

나는 물살위에 철없는 소년처럼 수제비를 띄우다가

저녁햇살이 내 등을 회초리질하면 나는 닳은 신발을 끄을며

지구의 끝을 가듯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때가 있다

때로는 패랭이꽃을 따 가슴에 꽂아보기도 하면서

나이 들어 철부지같은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구비진 골목길을 돌아오고 싶은 때가 있다

내 발이 끝난 곳에서 골목길은 다른 큰 길을 만나고

큰길은 다시 다리를 만나고 마침내 그 길은 산속으로 들어가

산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거라고 생각하면서

잎새처럼 흩어지는 생각들을 손바닥에 주워 모으며

돌아오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런 때일수록 나는

꿈이 슬플 때 삶이 빛난다고 쓴다

 

그래서 오늘밤도 잠자다가 일어나

귀뚜라미같이 슬픈 마음으로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