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스의 노래 / 이창동 그곳은 얼마나 적막할까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좋아하는 음악 들려올까요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 한 번도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해야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 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이제 어둠이 오면 촛불이 켜지고 누군가 기도해줄까요 하지만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당신을 축복하리 마음 깊이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 최근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 이 시는 이창동 감독의 자작시라는데 영화에서 자살한 소녀와 그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쓰인 거라고 합니다.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