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나무와 피아노 / 송용구
가을나무처럼 홀로 있어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영혼은 하늘빛에 젖어 두 팔을 허공에 펼치고
열매의 등불을 켜서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가을나무를 닮게 하소서
하늘의 뜨락을 매만지는
가을나무의 손가락에서
별빛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듯
내 영혼의 모든 잎새들이
바람의 음계(音階)를 밟고
하늘 궁전의 선율을 울리는
당신의 피아노 건반이 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마음의 우물에
빈 두레박을 내리시면
나는 초록빛 피아노 소리와 가을나무의 향기를
한점 남김없이 쓸어담아
하늘 궁전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빈 두레박에 담겨 올라간 나의 피아노 소리는
당신의 거룩한 서재(書齋)를 향기롭게 해드리고
책을 읽으시는 당신의 말소리를
아름답게 빛내드릴 것입니다.
가을나무의 잎새들이 하얀 책종이 위에
하나 둘 떨어지는 날
향기로 물든 나의 피아노 소리는
은하(銀河)의 강물이 되어 당신의 눈빛을 적시고
사색의 갈피마다 스며들어
당신의 푸른 꿈을 고이고이 어루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