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오늘 독서인 지혜서의 말씀에 마음이 오래도록 머뭅니다. “자연 숭배의 어
리석음”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자연의 아름다움
과 그 힘에 압도되어 그것들을 신으로 받들어 섬기는 일의 어리석음에 대
하여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눈에 보이는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자연 안에
서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면서도, 그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찾지도
알아채지도 못하는 무지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끔 ‘창조론을 믿느냐 진화의 법칙을 믿느냐?“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화의 법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저와 세상의 온갖 것
들은 그저 우연의 산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화의
법칙과 그 우연의 뒤에 자리한 숨겨진 섭리와 질서를 고백하기 때문입니
다. 또한 실존 철학에서 말하듯 저 자신을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그
래서 냉혹한 세상에서 피할 수 없고 고독한 삶을 살아 내야 하는 숨 가쁜
존재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선배 신부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유, 우
리 하느님은 참 재미있으신 분이야, 하느님은 엄청 심심하셨아봐. 요렇게도
만드시고 조렇게도 만드시고 …… .” 누가 뭐라 해도 참 재미나신 하느
님께서 이런 저런 궁리를 하시며 세상의 온갖 것을, 그리고 저를 비롯한 우
리를 모두 소중하게 만드셨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의 아름다움이 마음 깊숙이 다가옵니다. “하늘은 하
느님의 영광를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
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