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토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순교자가 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대단히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
입니다. 그러나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한국 순교자들의 상
황을 보면, 그들은 오늘 제1독서가 말하는 것처럼 고난을 겪고 파멸에 빠진
이들, 벌받고 시험받으며(지혜 3.2-5 참조)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이 없는 시선, 외적인 모습만 보는 시선, 현제가 전부
인 시선으로 볼 때입니다. 순교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만을 바랐기에, 곧 믿음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았
기에 모든 것을 다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비록 온종일 주
님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질지라도(로마 8.36 참조) 그분 사랑
을 확신 하였습니다. 스승께서 이 길을 가셨기에 그들도 이 길을 기꺼이 따
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때와 같은 박해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
러나 복음을 거스르는 풍조와 죽음의 문화가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십자가는 많습니다. 날마다
그 십자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삶에서 겪는 크고 작은 개인의 고통
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박해 시절의
순교가 눈물과 수고로 얼룩져 있듯이, 오늘날 우리 삶에서도 하느님 사랑
을 확신하면서 그분만을 선택하는 단호함으로 어려움을 기꺼이 끌어안을
때, 진정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예이자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
9월 20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아름드리나무도 손톱만 한 씨앗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씨앗도 자기를 품어 주는 흙이 없으면 자라
날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하느님 말씀도 엄청난 힘이 있
지만, 열매를 맺으려면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함께 도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네 가지 비유
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씨가 길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주위
의 여러 요인으로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표면이 딱딱한 길이
라면 씨가 속으로 파고들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같은 하느님 말씀이 가르
치는 것을 따르기에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둘째로, 씨가 바위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 씨는 싹이 자라기는 하지만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지만 묵상하지 않는 경우가 아
닐까 싶습니다. 묵상을 하며 말씀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게 한다면 내 삶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잘못된 선택을 뉘우치며, 새롭게 살아갈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 씨는 뿌리를 내려 자라
기는 하지만 이내 가시덤불 때문에 숨이 막혀 버립니다. 가시덤불은 씨보
다 더 빨리, 더 크게 자랍니다. 삶에서 만나는 걱정과 재물과 쾌락 등이 삶
에서 마주치는 가시덤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묵상하며 하루를 어떻
게 살지를 결심하지만, 정작 생활에서 이런 가시덤불을 만나면 말씀을 잊
고 거기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들은
이 말씀이 내 삶 안에서 때마다 필요한 답을 준다는 것을 온전히 믿고 의지
해야 합니다.
넷째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경우로 말씀을 자신의 생각보나 더 중
요하게 여기면서 잘 받아들이고, 삶에 잘 적용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
은 그 말씀을 삶에서 되새기고 기억하면서 차근차근 실천해 갑니다. ⊕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

